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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필한국사 광복회장님 발언 점령군과 해방군

황현필 한국사 광복회장님 발언

최근 광복회장님의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

내용의 요지인즉 소련은 해방군으로 들어왔고 미군은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이 친일파를 부활시켰다. 황현필 한국사에서 논란에 대해서 명쾌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견해에 따라서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고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래도 들어봐야 할 부분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구나 차기 대권주자이신 각 당의 인기 대표주자들께서도 각각 한마디 발언을 해서 더욱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중립적 입장에서 객관적 시각에서 설명하신다는 황현필 선생님의 영상도 한번 시청해보시면 좋습니다.

 

시작은 얄타회담입니다. 로즈벨트와 스탈린이 얄타에서 만나서 독일은 곧 패망하고 정리가 되니 아시아 일본을 정리해야 하니 소련이 좀 내려와서 만주 쪽의 관동군을 좀 없애달라. 미군도 이오지마 등 태평양에서 일본이랑 치열하게 싸웁니다.


얄타회담 때 한반도가 분할될 계획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도 합니다. 관동군의 관할 범위가 한반도 북부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이어서 한반도 북부에 들어옵니다. 소련군 치스차코프 사령관이 쉽게 관동군을 깨부수고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조선인에게 발표한 포고문 등을 발표합니다. 마지막 줄에 해방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소련군보다 늦게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 사령관 맥아더 사령관도 포고령을 발표합니다. 점령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예전 근현대 교과서 금성교과서에는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미군은 점령군으로 표현해서 나왔다고 하네요.

소련군은 북쪽의 인민위원회의 자치를 인정해줍니다. 미군은 맥아더 포고령 1조 의 의해서 미군정만이 유일한 정부임을 밝힙니다. 충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등의 무장해제를 를 지시하며 개인자격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북쪽도 김일성 등이 소련군을 등에 업고 들어왔기 때문에 조선의용군 등은 쉽게 들어오지 못합니다. 신의주 등에서 조선의용군 선발 대등을 받아들이는 척했다가 강제로 돌려보내서 중국 공산당 편에 서서 싸움하면서 힘을 내던 조선의용군을 돌봐주던 중국 공산당과 소련과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북은 인민위원회가 친일 경찰 등을 숙청을 하였습니다. 미군 사령관 맥아더 포고령 제2조가 친일파를 부활시켰다고 하는 조항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이제 친일행각이 드러나서 죽을까 봐 전정 긍긍하면서 숨고 피해 살았던 사람들이 포고령 제2조를 기반으로 다시금 제 위치를 찾게 되면서 반공을 외치게 됩니다.


미군은 행정과 치안에서 계속 일을 해왔던 친일 잔존 세력들을 계속 중용하여 행정업무를 수행해 나간다 광복회장님이 말씀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2조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외세가 침입했을 때 독립운동을 못할망정 협력해야 하나???? 프랑스나 이스라엘 등은 끝까지 나라를 배신하고 나치에 협력한 자들을 처벌하였다.

일제 패망 후 미군은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1945년 10월 미군은 철수 한국전쟁 때 미군은 참전 1953년 10월에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상호 체결하면서 동맹군으로 주둔하고 있습니다. 소련은 해방군으로 들어왔다고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시계를 차고 있으면 다 빼었거나 지주들을 곱게 보지도 않았으며 또한 군표를 남발해서 인플레를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해방군인데 오히려 환영받지 못했던 것이 조. 독일 패망 후에도 소련군은 베를린에 있는 여성들에게 잔혹한 행위를 함부로 하게 됩니다. 영화도 있습니다.


소련은 이미 김일성 등 사회주의 세력 등을 지원하고 있었으며 당시 인텔리 지식인층에는 사회주의에 흠뻑 취해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미군은 왜 점령군이라고 자처했을까? 미군은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에서 그리고 태평양에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서 하게 됩니다.

일단은 많이 전쟁에 치졌을거 같습니다. 그래서 좀 더 수월하게 일을 처리하고 해결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유럽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병사들은 크리스마스전에 미국으로 돌아간다. 장군들도 병사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녔던 거 같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더 길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태평양에서는 또 다른 전선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패망한 나치 독일도 재건에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고 패망한 일본도 관리하고 한반도도 관리해야 하는데 좀 더 편하게 관리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미국이 일본 본토에 들어가기까지는 정말 험난하고 힘든 전쟁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오지마 전투 등을 하면서 해병대등 미군들이 많이 죽어나가게 되면서 결국 원자폭탄을 일본 본토에 투하하게 되는데 일본의 태평양에서 보인 전투 모습 등 사이판 이오지마 전투 등에서 강렬하게 싸웁니다.

 

반자이 돌격 가미가 제등 미군은 더욱더 강한 점령군으로 일본땅을 밟게 되어야 쉽게 저항을 물리쳐야 상대 일본이 협력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유럽전선과 태평양 전선의 차이랄까 나치 독일 군사와 일본 군국주의 군인들과 직접 싸워보면서아시아 태평양 전략이 수립된 거 같습니다.

 

이어서 한국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론 한국과 일본은 엄연히 다르지만 그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상태에서 이제 막 해방을 맞이했던 국가였을 뿐입니다.

아쉽습니다. 프랑스처럼 우리도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해서 승전국의 지위를 가져야 하나 그전에 일제의 패망에 프랑스와는 다른 차원이 돼버립니다.

 

일본은 천황이 항복을 선언하고 본토에 상륙한 미군은 중무장하고 들어왔는데 모든 국토에서 저항 등을 일절 하지 않아서 미군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중무장을 경무장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일본은 좀 독특한 모습이 있어서 미 국무부에서 루스 베네딕트 인류학자에게 일본에 대해서 연구해주라고 주문하니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펴내게 됩니다.

미군이 한반도에 점령군으로 들어온 이유를 좀 더 알아보면 좋겠네요. 패망한 나치 독일에도 점령군으로 들어왔는지 궁금하네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베트남에 점령군으로 들어왔는지도 궁금합니다. 베트콩들이 해방전쟁이라고 하면서 미군과 전쟁했다고 하던데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등 최근까지 전쟁 등에서 미군의 전쟁 현지에서의 위치가 동맹군인가 점령군인가는 현지 주민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재의 미군은 동 맨 군으로서 주둔하고 있습니다. 친일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해서 책임을 묻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의 힘으로 친일세력을 청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한 점은 우리의 책임이다.

소련군은 그럼 해방군이었나?? 소련군이 북한 주민에 대한 약탈 및 강 강등의 사건 등이 그대로 평양에 있던 소련군 사령관이 연해주 상급부대에 보고를 합니다. 신의주와 함흥에서는 학생들 위주로 반공의거가 일어나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소련군은 말이 해방군이지 오히려 점령군? 에 더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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