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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장군 독일전격전 히틀러암살

롬멜 장군 독일 전격전 히틀러 암살

유튜브에는 다양한 2차 대전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정말 롬멜 장군은 사막의 여우이며 전차를 사용할 줄 아는 진정한 군인이었다. 그가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윗선 배인 훌륭한 구데리안 장군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롬멜 장군의 휘하 장교와 군인들도 충실히 롬멜 아래에서 단결하여 잘 싸웠다.

독일은 현장지휘관의 군사작전 재량권이 있는데 전쟁이 동부전선 등으로 확대되면서 보급도 제대로 되지 않고 방어도 힘든 전장도 많게 되자 현장 지휘관들은 후퇴 요청을 요구하지만 히틀러는 거부하며 말을 듣지 않는 장군들은 보직 해임시켜버린다.

롬멜
롬멜장군과부하들
롬멜장군과부인
롬멜장군
롬멜장군병사묘지에서


무엇보다 현장지휘관들의 그 상황에 맞는 작전지휘로 유리한 싸움과 승리를 얻었던 독일이었지만 선동가인 히틀러는 자기 고집대로 어리석은 명령만 내릴 뿐이었다. 간신히 여러 명의 장군들이 찾아가서 요청하면 그때서야 뒤늦게 현장지휘관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식이었다.

 

전장에서는 인명피해가 계속 나고 있음에도 뒤늦은 판단으로 오히려 사태만 악화시키는 꼴이다. 그마저도 실전 경험이 많은 뼈대가 굵은 병사들이 악착같이 막고 막고 방어하다가도 물량으로 밀고 들어오는 소련군들에게 천천히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는 롬멜 장군이 열악한 보급과 열세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영국군에게 큰 피해를 준다. 영국 수상 처칠은 롬멜을 위대한 장군으로 인정해주기까지 했다.

독일롬멜장군


히틀러나 나치들은 롬멜을 선전선동으로만 활용했지 롬멜이 요구한 보급 등 물량 조달은 해결해주지 못했다.
히틀러는 전쟁을 동부전선까지 확대했고 또한 장기전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건 큰 패배의 지름길일 수밖에 없다. 유능한 현장지휘관들을 내친 것도 무능한 윗선의 나치 잔당들이다. 그들은 선동가 들일 뿐이지 결국 전술 전략가들이 아니다. 독일 국방군은 독일 군대라고 치면 나치 친위대는 히틀러 친위대 정도 격인 거 같다.

 

독일도 전쟁이 길어지고 피해가 늘어나면서 서서히 히틀러 제거 계획 등이 세워지게 된다. 반나치 협력자들과 히틀러 암살에 협조하였고 폭탄테러가 실패에 그치고 체포되면서 롬멜의 명성 때문 인지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러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날이 부인의 생일이라 독일 본국에 있었습니다. 하필 자리가 비어있을 때 일이 터진 것이 조. 연합군 입장에서는 때를 잘 만난 것이고 롬멜 장군 입장에서는 너무나 제한적인 조치밖에 내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히틀러 또한 롬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갈등을 겪었다고 하네요. 상륙할 때 바로 타격을 줘야 한다고 전차부대를 바로 쓸 수 있게 편성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적이 공중 제공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해안선 근처에 대규모 전차부대를 둘 수 없다 하여 뒤쪽으로 배치하여 상륙 시 바로 전차를 동원할 수 없게 됩니다.

롬멜 장군도 북아프리카에서 진두지휘할 때도 독일에서 지원해주는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기온은 덥고 모래바람은 매서워서 탱크병들은 탈진 아며 전차는 잦은 고장인데도 분투해서 승리하지만 결국 철수하게 되죠. 지중해를 장악한 연합군들이 독일에서 북아프리카로 보내는 보급 선박 항공기 등을 거의 격퇴시킵니다.

 

전쟁의 실패는 독일 국민들 인기에 열광하던 나치의 미친 정치적 전쟁 때문에 독일 국방군들이 패배한 것입니다. 유능한 참모들을 다 보직 해임시키고 말도 안 되는 미친 선동으로 독일 국민들을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군사작전 등은 유능한 군인들이 해야지 정치 선동가들이 해서는 안됩니다. 소련의 스탈린도 이점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코프 등 몇몇 장군들이 그래도 있어서 승리할 수 있었지 엄청난 물량공세로 수많은 군인들이 죽어나가면서 독일 베를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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